해상 실크로드는 개통된 후 수나라와 당나라(6~7세기) 이전에는 육상 실크로드의 보조적인 형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에는 서역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해 육상 실크로드가 전쟁으로 막히면서 해상 실크로드가 대신 번성했습니다.
당나라 시대에는 조선술과 항해 기술의 발달과 함께 중국은 동남아시아, 말라카 해협, 인도양, 홍해, 아프리카 대륙으로의 해상 항로를 개척하고 확장했습니다. 해상 실크로드는 결국 육상 실크로드를 대체하여 중국의 대외 교류의 주요 통로가 되었습니다.
송나라 시대에는 조선술과 항해 기술이 크게 향상되었고, 나침반이 해상 항해에 널리 사용되어 중국 상선의 장거리 항해 능력이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송나라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동남 연안 국가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했으며, 광저우는 해외 무역의 최대 항구가 되었습니다.
원나라는 경제에서 중상주의 정책을 채택하고 해외 무역을 장려했습니다. 중국과 무역하는 국가와 지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미국으로 확대되었으며, 중국 역사상 최초의 체계적이고 강력한 대외 무역 관리법을 제정했습니다. 해상 실크로드도 전성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명나라의 해상 실크로드 경로는 전 세계로 확장되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정화의 7차례 서양 원정은 명나라 정부가 조직한 대규모 항해 활동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39개 국가와 지역에 도달했습니다. 이는 다 가마가 유럽에서 인도까지의 현지 항로를 개척하고 마젤란의 세계 일주를 위한 선구자였습니다. 동쪽으로 향하는 "광저우-라틴 아메리카 항로"(1575)는 광저우에서 출발하여 마카오를 거쳐 필리핀의 마닐라 항구로 가서 해협을 건너 태평양으로 진입하여 동쪽으로 멕시코 서해안으로 향했습니다.